본문 바로가기
> 정보얻기>삼천칼럼

삼천칼럼

대학교육은 자신을 찾는 길을 열어줘야

0 0

주소복사

[ 들어가기 ]

  졸업과 입학 시즌이다. 얼마 전(2015년 5월 11일)에 국내 주요 일간지가 ‘우수한 양들’(Excellent Sheep, 우리나라에서는 ‘공부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이란 책의 저자 윌리엄 데레저위츠(William Deresiewicz)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로 실었다. 입시철 중에 대학입학에 관한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또 나대로 조언을 주면서 이 책을 사 읽어보기로 했다. ‘미국 엘리트의 잘못된 교육과 의미 있는 인생으로의 길’이라는 부제가 특히 내 관심을 끌었다. 동시에 미국에 있는 큰손자(고교 3학년)에게도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미국 명문대의 문제점과 어떤 대학 선택이 젊은이들에게 옳은지를 저자(전 예일대 영문학과 교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분석하고 또 그 결론에 따라 선택을 권하고 있다. 미국 대학의 문제점이 우리나라의 문제점과 어찌도 그리 같은지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 대학을 순례하는 듯한 착각에 젖어들었다. 

 

[ 대학의 현실 ]

  자녀들이 소위 명문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열망은 무엇보다 크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어!’라고 환희의 만족감을 내뱉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정말 그럴까? 명문대는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해주는가? 학생들을 그렇게 잘 지도하고 가르치는가? 도대체 무엇이 명문대를 만들까?… 소위 스카이(SKY)대학이라는 대학 중 한 곳에서 40여년 넘게 몸담아온 나로서도 이런 질문에 쉽게 답을 주지 못하겠다. 더구나 학생으로 다녔던 대학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고 하는데…. 


  민주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주는 사회장치와 시민의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흙(나무?)수저니, 은수저니, 금수저니 하며 사회 불평등의 일면을 이야기한다. 잘되거나 잘못되면 단순히 조상 탓으로 돌리는 우리 민족성에 스며들어 있는 숙명론적 인생관 때문일까?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나갔단 뜻인가? 그러나 우리사회에 수많은 ‘띠’가 존재함은 부정하기 힘들다. 권세가는 재력가와 손잡고 세상을 흔들고, 특수고교‧대학 출신들이 최고 학술단체까지 독점하려 하고, ‘끼리끼리’의 인연을 편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굳게 지키려 하는 등등을 지켜보노라면 저절로 ‘수저론’에 어느 정도 동감하게 된다. 물론 자유경쟁사회에서 능력에 따라 만들어진 ‘띠’라면 이런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갑자기―전혀 그 문제를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자유와 자율의 소용돌이가 몰아닥친다. 입시준비에만 전념한 그들에게 대학생활의 올바른 영위능력은 전무하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학교육의 가장 큰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부모들은 자녀들이 대학교육으로부터 미리 직업을 대비한 철저한 준비를 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의 미래 직업을 위한 교육에는 무관심 내지 소극적이다. 직업사회는 급속히 변화할 뿐 아니라, 대학교수들 대부분은 바깥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지내본 경험이 없기도 하다. 그만큼 대학현실과 부모들의 소망과는 거리가 크다.


  실제로 저학년생들과 접해보면 대학생활이 기대했던 바와는 많이 다르다며, 일반적으로 불평이 많다. 명문대일수록 불평이 더 크다. 이런 현상은 바깥에서 느끼는바(모 일간지의 대학 평가 및 국제적 대학 평가 기관의 서열 순위 등)와는 차이가 많다. 확실히 명문대는 교육시설, 학생들을 위한 편의시설, (우수) 교수와 교육보조 인력의 양과 질에서 그렇지 못한 대학보다 앞선 면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명문대 교수일수록 학생들(특히 학부 학생들) 교육보다는 자기들 연구에 더 집중하려 든다. 연구업적 평가가 그들의 진급 및 평생직(tenure) 획득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연구를 많이 수행하는 소위 유명교수들에게는 학부 강의시간도 줄여주는 특혜(?)를 주는 까닭에 학부학생들이 그들을 접할 기회는 더 줄어든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 흐름이며, 서구 선진국에서도 많이 듣는 문제점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책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아이비리그(Ivy League)대학들, 힙스터스(HYPSters) 및 금 12대(Golden Dozen) 등 선망의 대상이 되는 대학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다.

 

[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 ]

  우리나라 고등 교육법 제28조는 대학의 목적을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별하다고 느끼는 점은 없지만,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적을 말하고 있다. 더 쉽게 풀어본다면 대학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격체를 만들고, 미래 직업에 충분히 대비해 후에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지다. 누가 이를 준비해줄까? 대학에서 받는 교육이? 대학교육이 충분할까? 


  이런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학생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대학은 이를 성취할 수 있는 기본적―아마도 최소한의―틀만 제공한다. 학생 본인은 대학이 제공해주는 다양성과 깊이를 최대한도로 이용하고 흡수해야 한다. 다양성에는 인간관계까지 포함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사회, 직업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대학이 이에 대한 준비를 완벽하게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단지 대학졸업 후 30-40년을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지낼 수 있도록 지극히 기본적인 소양(전문지식까지도 이 범주에 속한다.)을 가르친다. 대학은 학생이 스스로 자기(자아, self)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자기의 미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준비를 해주길 바란다. 21세기 융합시대가 요구하는, 융통성과 창의성을 함께 갖춘 미래형 인재를 배출하길 원한다. 이를 위해서 학생은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한 주관을 확립하고, 경험과 노력의 가치를 배우며, 소통과 대화(설득력 있는 표현력) 능력의 취득 등을 전문지식과 함께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대학들이 미래지향적으로 신설한 대학과 학과, 복수전공 및 융합프로그램에 특히 관심을 갖길 권하고 싶다.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지식 흡수에만 익숙해있을 터이므로, 대학생활 동안 많은 독서와 사고의 확장 노력을 통해 사고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도록 말이다. 무엇보다도 대학은 튼튼한 기본과 기초가 가장 중요함을 깨닫기를 바란다. 급속히 변하고 있는 미래직업사회에서는 충실한 바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위 일류 대학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대학의 선택을 우선해야 한다.

 

  •